이 글은 '기묘한 정신과의사 정리을의 '기묘한 경험' 글 6개 중 네 번째 글입니다.
그런 여러 힘든 경험과 혼란스러운 마음을 그대로 둔 채, B대학병원에서 아침 7시쯤 퇴원해서 집으로 가는 길, 매형이 FM93.1 클래식 방송을 약하게 틀어놓았다. 그리고 음악을 듣는 순간,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었는지를 순식간에 깨달았다. 바이올린이 곁들여진 음악을 듣는데, 바이올린 소리가 전자바이올린 소리로 들렸다. 아침부터 전자바이올린 음악을 틀어줄 이유가 없으니까.
'아, 내가 청각에 문제가 있었구나.'
처음 느꼈던 그 이상한 경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했던 그 경험도 가죽소파의 소리가 청력이 왜곡되면서 마치 나무 두들기듯이 시계 초침처럼 들렸고, 그래서 그걸 시간과 연관시켰던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왜 그때야 깨달았을까? 심지어는 우리 집에는 초침이 있는 시계 자체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퇴원하고 일단 누나네 집으로 가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절망적 이게도 아침 7시쯤 집에 도착했는데, 아주 잠깐 눈을 붙였던가, 더 잠들지 못하고 아침 9-10시쯤에 다시 깨어났다. 그리고 방 천장이 마치 이어폰의 거대한 진통판이 된 것처럼, 온갖 소리들이 전날과 마찬가지로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들로 쿵쾅거리면서 들렸다. 화장실 플러시 버튼을 누르고 물이 내려가는 그 소리가 정말, 그 소리를 전반부 중반부 후반부라고 나뉜다면, 전반부와 후반부만 들리고 중반부는 들리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물소리가 이어져야 하는데, 중반부가 고음영역인지 뭔지, 그 부분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생각도 자꾸 이상한 쪽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어렴풋이 청력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어떤 부분의 문제인지는 깨닫지 못했다. 다만, 바이올린 소리가 전자바이올린 소리처럼 들리고, 가까이서 들으면 그렇지 않지만 내가 방에 있고 거실 TV에서 음악이 나오는 것을 들으면 마치 과거 옛날의 오락실 게임기 음악소리처럼 8-bit 음악처럼 들렸다.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들이 음이 분절되고 왜곡되고 단순화해서 들렸다.
방 안 침대에 누워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이렇게나 괴로워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누나와 매형의 소리가 들렸다. 누나와 매형은 새로 산 전자동 에스프레소 머신 얘기들을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은 그런 얘기들을 끊임없이 계속했다.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나는, 이렇게나 괴로워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내 생각은 전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에 집중되어 있었다. 걸어서 얼마 걸리지도 않은 같은 집 안이었는데, 나는 그 실물을 볼 생각은 안 하고, 머릿속에서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 부분이 가장 묘사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이해가 잘 안 가시더라도 넘어가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내가 그때 전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을 생각할 때, 그 전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의 원리가 너무 이해가 안 갔다. 누나네 부부가 예전에는 수동 전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을 썼었고, 그런데 거기에 어떤 작은 모듈을 옆에 붙이고, 위에 또 다른 작은 모듈을 붙이고. 그러니까 에스프레소가 나오고, 거기에 또 한 개의 모듈을 붙이니까 카페라테가 나왔다. 그렇게 느껴졌다. 그 순간만큼은 너무 당연한 일상에서 내가 소외되어 있고, 무지했고, 그리고 세상 모든 일들의 이치가 '모두 다 알고 있는데, 나만 잘 모르는 상태에서 돌아간다'라고 느꼈다.
"누나, 전자동 에스프레소머신의 원리가 뭐야?"
"그냥 원두를 붓고 에스프레소면 에스프레소, 라테면 라테, 그렇게 버튼만 눌러주면 되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그... 머신이 작동하기 위해서 뭔가 조립하는 것처럼 옆에 뭘 탁 붙이고, 위에도 뭘 탁 붙이고, 그렇게 조립하니까 커피가 나오는 거잖아, 그게 무슨 원리인지 모르겠어. 간략하게 설명 좀 해줘."
이 기묘한 질문이 누나에게 심적으로 큰 충격을 준 것 같았다. 나름 똑똑했던 동생이 미쳐버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미 응급실도 두 번이나 다녀온 상황에서. 지금 내가 묘사한다고 고민해서 썼는데도 나 조차도 이게 이해가 될까?라는 생각인데 이 황당한 질문을 받았으니. 누나가 잘 이해를 못 하길래 다시 물었다.
"누나가 좀 전에 나에게 유자차를 타 줬잖아, 그 메커니즘을 좀 설명해줘 볼래?"
"유자차 유리병에서 스푼으로 유자차를 한 스푼 떠서, 컵에 넣었어. 그리고 뜨거운 물을 붓고, 그걸 스푼으로 저어서 너에게 줬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 모듈화 방식 말이야..... 뭔가 그런 걸 할 때 탁-탁-탁 해서 조립하는 뭔가가 있잖아, 나는 그게 없는데."
말을 좀 더 이어나갔다가 강제로 정신과 병원에 입원당할 것 같은 서늘함을 느꼈다. "이 생각은 이번 일이 있기 훨씬 전부터 그 메커니즘이 잘 이해가 안 돼서 물어보고 싶었어. 이번 일 때문이 아니니, 그냥 신경 쓰지 마."라고 대강 마무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누나의 정신적 충격은 매우 컸었던 것 같다. "오늘 아니면 내일, 정신과에 가 보자. 지금 잠도 잘 못 자고 있으니까, 그렇게 하자."라고, 거의 강압적인 느낌으로 얘길 했다. 그때 만약 정신과를 갔으면 치료가 산으로 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도 막막하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 느낌.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면,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무엇이 남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