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기묘한 정신과의사 정리을의 '기묘한 경험' 글 6개 중 마지막 글입니다.
돌발성 난청, 시력저하, 말 더듬증. 정신과 의사의 '기묘한 경험' [5/6]
이 글은 '기묘한 정신과의사 정리을의 '기묘한 경험' 글 6개 중 다섯 번째 글입니다. 유자차의 메커니즘. 정신과 의사의 '기묘한 경험' [4/6] 이 글은 '기묘한 정신과의사 정리을의 '기묘한 경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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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진단명이 뭘까?"
"내가 왜 갑자기 그렇게 되었을까?"
아직까지도 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진단할 수 없는 정신과적 병명은 없을 거라고 나름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던 나였지만, 아무리 스스로 분석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답답한 나머지 나의 직업을 숨기고 다른 정신과 선생님들께 여러 번에 걸쳐 진료를 받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진단을 내려주지 않았고, 아무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 정신과적 진단명은 어떤 경우에서도 '기능적 결함'이 없으면 진단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마음의 허들을 뛰어넘었다. 식도 파열의 염려에서부터 짧은 시간 폐암 말기 환자가 되기도 했고, 조증 내지는 조현병, 치매가 아닐까, 거기에 뇌경색 내지는 뇌출혈에 극한의 공포를 느끼고, 돌발성 난청에 대한 걱정까지. 지금도 무엇이 원인인지 알 수 없어서 언제 재발을 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던 이 특별한 경험. 원인도 알 수 없는데 증상만 너무나 뚜렷한 이 경험. 내가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것은 우연일까요, 그냥 재수가 없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뜻 혹은 의도가 부여한 필연적인 일이었을까.
공황이나 불안을 느끼는 분들께 항상 하는 얘기, "이미 한번 우리가 겪어본 불안은, 그 극한을 경험해 보았고 끝이 어디인지 알기에 처음 느꼈던 그때만큼 힘들지는 않을 거예요." 나에게도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며. 진료를 1개월이나 쉬게 되었고, 적지 않은 비용을 소모했지만, 이 일로 인해 내가 알게 되고 얻은 것들을 생각해 봤다. 건강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고.
처음에 밥맛도 없었는데 누나가 사 와서 억지로 먹었던 전복죽, 병원에서 포타슘 용액 주면서 오렌지주스와 함께 마시면 흡수율이 빠를 거라고 했는데. 그때 정말 십 수 시간 금식 후에 처음 마셨던 오렌지 주스의 너무너무 맛있었던 그 맛. 너무 바쁘게 사느라 함께 할 시간이 너무 적었던 가족들과 함께했던 시간들. 지금도 생각할 수도 없지만 가족들과 대낮에 짜장면을 시켜 먹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내 차를 태워주니 조카들이 너무 좋아해 주었던 일도. 나를 보살펴 주던 많은 사람들, 그리고 걱정해 주는 많은 사람들. 누군가는 나를 이렇게나 걱정하는구나 하는 마음.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무엇인가가 내게 억지로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삶에서 조그맣게 포기해야 할 일들을 좀 찾아보려고 한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찾기가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찾아보기. 그래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 기괴하고도 끔찍하고 지루한 경험은 이렇게 결말을 맺는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허전하긴 하다.